리비아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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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리비아는 스페인 지로나 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프랑스 내 스페인 영토이다. 이베리아인 시대부터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로마 시대에는 'Julia Lybica'로 불렸다. 1659년 피레네 조약 이후 프랑스에 둘러싸인 스페인 월경지가 되었으며, 1.8km의 도로를 통해 접근 가능하다. 2017년 카탈루냐 독립 투표에서 높은 찬성률을 보였으며, 현재는 스페인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리비아는 자우메 1세 학교와 에스테베 약국 박물관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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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659년 피레네 조약과 1660년 리비아 조약으로 리비아는 스페인 본토에서 분리된 월경지가 되었다. 이 지역은 스페인 본토에서 최단 1.7km 정도 떨어진 프랑스 랑그도크루시용 피레네오리앙탈 주에 위치해 있다. 과거 스페인 본토와 리비아를 잇는 중립 도로를 통해 스페인 국민들이 프랑스 출입국 심사 없이 왕래할 수 있었으나, 1995년 솅겐 조약 실시 이후 중립 도로 설정은 해소되었다.
2. 1. 고대 및 중세
리비아는 이 지역을 지배했던 이베리아인의 oppidum이 있던 곳으로, 로마 시대에는 ''Julia Lybica''라고 불렸다. 고대에는 세르다냐의 수도였으나, 중세 시대에 Hix(프랑스 부르-마담 코뮌)로 대체되었다. 서고트족 시대에는 리비아의 요새인 ''castrum Libiae''가 672년 반란군 나르본의 파울에 의해 밤바 왕에 대항하여 점령되었다.8세기에 리비아는 "세르다냐의 도시"로서, 무슬림 스페인의 총독 압둘 라흐만 알 가피키가 투르 전투 (732 또는 733), 즉 푸아티에 전투를 앞두고 아키텐의 오도 대공과 동맹을 맺어 반란을 꾀하던 무어인(베르베르) 반란군 우트만 이븐 나이사("문누자")를 제거한 사건의 무대였을 수도 있다.
프랑스-스페인 전쟁 (1635–1659) 이후, 1659년 피레네 조약에 따라 루시용, 콩플랑, 카프시르, 발레스피르, 북부 세르다냐("세르다냐") 지역이 프랑스 왕실에 양도되었다. 이 조약은 피레네 산맥을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국경으로 설정하여 북카탈루냐를 카탈루냐에서 분리했다. 그러나 조약에서는 마을만 프랑스에 양도하도록 규정했는데, 리비아는 세르다냐의 고대 수도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카탈루냐어로 ''vila'')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리비아는 프랑스 내 스페인 영토로 남아 프랑스 왕국에 속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1660년에 체결된 후속 리비아 조약에서 확인되었다.[3]
2. 2. 근세
1659년 피레네 조약과 1660년 리비아 조약에 따라 루시용, 콩플랑, 카프시르, 발레스피르, 북부 세르다냐("세르다냐") 지역이 프랑스 왕국에 양도되었다. 이 조약으로 피레네 산맥이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국경이 되면서 북카탈루냐는 카탈루냐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나 조약은 마을만 프랑스에 양도하도록 규정했고, 리비아는 세르다냐의 고대 수도 지위를 가진 도시 (카탈루냐어로 ''vila'')로 간주되어 프랑스 내 스페인 영토로 남았다.[3]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민 정부 시절, 주민들은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 프랑스를 건널 때 특별 통행증이 필요했다. 오늘날에는 두 국가가 솅겐 지역에 속해 국경 통과 절차가 없어졌으며, 국경 간 인프라가 유일한 문제이다.[4] 두 국가는 리비아에 병원을 공동 운영하는 등 지역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5]
이 월경지는 스페인에서 1.8km 길이의 도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었는데, 1995년 솅겐 조약 시행 전까지 리비아 조약에 정의된 "중립 도로"였다. 이 도로는 프랑스 측이 복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스페인 측이 푸이세르다와 리비아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관세 면제 노선이었다.[3] 이 도로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공동 소유이며, 스페인에서는 N-154, 프랑스에서는 국도 20호선과 RD68의 일부로 지정되어 있다. 이 도로는 여러 해 동안 논란이 되었는데, 프랑스 당국이 설치한 정지 표지판이 밤새 제거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지 표지판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6]
2017년 카탈루냐 독립 투표에서 리비아에서 투표한 591표 중 561표가 독립에 찬성했다. 이 국민 투표는 스페인 법원에서 불법으로 간주되었지만, 스페인 경찰은 이 마을에서의 투표를 중단시키지 않았다.[7]
2. 3. 현대


1659년 피레네 조약과 1660년 리비아 조약의 결과, 리비아는 프랑스 내 스페인 영토가 되었다. 이 조약으로 루시용, 콩플랑, 카프시르, 발레스피르, 북부 세르다냐("세르다냐") 지역이 프랑스에 양도되었고, 피레네 산맥이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국경으로 설정되어 북카탈루냐가 카탈루냐에서 분리되었다. 하지만 리비아는 세르다냐의 고대 수도였기 때문에 도시(카탈루냐어로 ''vila'')로 간주되어 프랑스에 양도되지 않았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통치 시기, 주민들은 스페인 본토로 가기 위해 프랑스를 건널 때 특별 통행증이 필요했다.
2. 3. 1. 정지 표지판 전쟁
스페인과 프랑스는 솅겐 지역에 속해 있어 국경 통과 절차가 사라졌다. 현재는 국경 간 인프라 문제만 남아있다.[4] 두 국가는 리비아에 공동 병원을 운영하고, 다른 지역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5]리비아는 스페인에서 1.8km 길이의 도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1995년 솅겐 지역 시행 전까지 이 도로는 리비아 조약에 따라 "중립 도로"로 지정되었다. 이 도로는 프랑스 측이 복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스페인 측이 푸이세르다와 리비아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관세 면제 노선이었다.[3] 스페인과 프랑스가 공동 소유하며, 스페인에서는 N-154, 프랑스에서는 국도 20호선과 RD68의 일부로 지정되어 있다. 이 도로는 여러 해 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는데, 프랑스 당국이 설치한 정지 표지판이 밤새 제거되는 사건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지 표지판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6]
2. 3. 2. 카탈루냐 독립 투표
2017년 카탈루냐 독립 투표에서 리비아에서 투표한 591표 중 561표가 독립에 찬성했다.[7] 이 국민 투표는 스페인 법원에서 불법으로 간주되었지만, 스페인 경찰은 이 마을에서의 투표를 중단하기 위해 개입하지 않았다.[7]3. 정치
2011년 지방 선거 결과, 집중과 통일(CiU)의 실비아 오리올스 팔메르(Silvia Orriols Palmero)가 지방 자치 단체장으로 선출되었으며[11], 지방 의회는 집중과 통일 8석, Partit Popular de Catalunya 1석으로 구성되었다.[12]


